스포일러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즈음만 해도 SF 장르라는 것에 분명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문과 SF라는 칭호를 얻은 이 영화에 궁금증이 생긴 것을 발단으로 처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감상하게 되었고 SF 장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영화는 웅장한 음악과 압도적인 외형묘사들로 금세 몰입시켰다. 그렇게 영화는 어느새 끝이 나 있었고 나는 감상을 마치며 울고있었다.
그리고 한번 봤던 영화는 다시 잘 못 보는 성격인 탓에 몇년이 지난 지금, 언젠가 이 영화를 다시 보려던 다짐을 떠올리며 2번째 감상을 시작했다.
영화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집의 창을 비추며 루이스의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딸로 보이는 듯한 아이의 성장과 함께 때론 싸우기도, 때론 함께 기뻐하기도 한 시간들을 거쳐 아이가 병에 걸렸는지 루이스는 딸을 떠나 보내야했다.
루이스는 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 언어학 전문가다. 어느 날 세계 각지 12곳에 괴비행물체가 나타나자 정부는 괴비행물체를 타고 온 외계인들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저명한 언어학자인 루이스를 찾아온다. 의견대립을 겪고 떠나려는 웨버 대령(포테스트 휘태커)에게 루이스는 다른 전문가에게 '전쟁'을 산스크리트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물어보라 하고 대령은 "다툼"이라고 말하는 언어학자 대신 "더 많은 암소를 원한다"라고 좀 더 화자의 근원적인 의도를 해석해내는 루이스를 데려가기로 한다
헵타포드라 부르는 그 존재들을 조우한 뒤, 루이스는 함께 불려온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과 함께 그들과 좀 더 긴밀하고 투명한 관계를 갖고자 보호복을 벗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루이스가 방호복을 벗기 직전 새장에 있는 카나리아라는 새를 쳐다보는데 이 새의 울음소리는 루이스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19세기 영국 탄광에서, 호흡이 인간보다 빠른 카나리아를 이용해 공간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용했던 것이 기원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완벽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카나리아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역사가 오래된 친숙한 새로, 루이스로 하여금 두려움을 거두고 헵타포드를 길들일(언어를 가르침)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
루이스가 투명벽 하나를 두고 헵타포드와 제대로 된 첫 인사와 교감을 가진 뒤 기지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기억에 미래시점이 간섭을 일으킨다. 헵타포드의 문자를 배워갈수록 기억을 떠올리는 빈도와 깊이가 심화된다. 심화됨에 따라 헵타포드에 대한 루이스의 집착도 함께 심화되는데 이것은 예지를 통해 본능적으로 생긴 아이에 대한 애착이 작용하는 탓이다.
헵타포드의 문자를 거의 익혀갈 때 쯤, 각국 정부들은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성급하게 던진다. 그들은 "Offer weapon"라 대답했고 이해와 관심이 결여된 사람들은 'weapon'이란 단어에 집착하고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죽음이란 위험 앞에 선 헵타포드들은 인간들에게 죽음을 무릅 쓴 마지막 메세지를 전한다. 그것은 바로 '화합'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불신이란 장벽 아래 인류는 화합하기를 꺼리고 이에 루이스는 좀 더 명확한 뜻을 듣기위해 헵타포드를 홀로 찾아간다.
루이스는 오래 유대감을 쌓아 온 덕분에 헵타포드 둘을 구분하는 듯 코스텔로에게 애봇의 행방을 묻는다. 애봇이 에스코트팀이 설치한 폭발물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듣자 루이스는 인류를 대신해 사과를 전한다. 그런 루이스에게 코스텔로는 다시한번 "Offer weapon(무기를 전하다)"라 말하며 3000년 뒤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3000년이란 긴 시간동안 인류가 유지되고 외계인들을 도울수있을 만큼 번성하려면 이 시점의 우리는 "화합"이 필요한 것을 헵타포드는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기의 정체는 미래를 보는 능력, 정확히 말하면 만물에 관하여 '비선형적인 시각'을 가지게 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동시에 루이스는 자신이 그 동안 봐왔던 환영들이 자신의 미래였음을 깨닫고 자신의 미래, 아이의 미래에 대한 숙명적인 이끌림으로 흐름에 저항하려 한다.
이것은 자칫하면 비선형적인 시각으로 순응하는 삶의 태도와 대치된다고 생각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비선형적인 시각으로 인해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는 것은 현재를 치열하게 살게 만드는 것이다.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며 치열하게 현재의 순간을 사랑한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과거의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없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이스가 헵타포드로부터 받은 '무기'다. 후반부 루이스가 이안에게 "삶의 처음과 끝을 볼 수 있다면 바꿀거냐"고 묻는데 이것은 이안이 루이스에게 "아기를 갖고싶냐"는 물음과 비슷한 맥락으로 병치된다. 이에 루이스는 긍정의 대답을 한다. 이것은 곧, 모든 삶의 순간을 온전히 사랑하겠다는 선언이다.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There are days that define your story beyond your life"
처음 이 영화를 보고나서 많은 울림을 받았다. 이 영화가 주는 결론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지금, 현재에 충실하세요'와 같은 뻔한 메세지일 수 있다. 하지만 진실로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을 초월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언인지 직접 목도하고 나서야 어떤 깨달음을 전달받은 것 같다. 마치 내가 루이스처럼 미래라도 보게 된 양, 나의 삶의 태도는 조금 바뀌었다. 현실엔 헵타포드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이러한 삶의 태도는 종종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와 부딪히긴 하지만 이 영화로 인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삶을 향한 시각의 변환점을 맞이했던 것 같다.
루이스의 딸의 이름 Hannah 처럼 이 영화는 비선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주제의식과 구조가 합일되는 지점은 이 영화에 대해 아름다움과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영화가 헵타포드의 문자와 구조적으로 닮아있는 것에서 어쩌면 이 영화는 이 영화 자체로 이야기 속 문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이 루이스와 같은 무기와 선물을 받기를,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어떠한 해방을 얻기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더해 인류가 화합하기를.. 이 이야기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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