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외국영화

The Lobster (더 랍스터) [2015] 리뷰

by 논제로썸 2020. 9. 27.

스포일러

 

 

영화는 어떤 여인이 한 당나귀를 죽이면서 시작된다. 언뜻 보면 여자가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많은 당나귀 가운데 특정한 당나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여인을 보고 있노라면 그 여인에게서 그 당나귀를 향한 알 수 없는 분노가 저변에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뒤에 나올 내용이지만 타인과의 로맨스적인 결합에서 도태되거나 버려진 인간이 누군가에게 분노가 살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아내에게 버려진 남성이다. 45일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적절한 짝을 찾지 못하면동물로 폐기 처리되는 사회의 약속에 의해 데이비드는 호텔로 끌려간다. 동물이 돼야 할 때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관리자의 질문에 데이비드는 평생 번식하는 랍스터가 되겠다 말한다. 담담히 생의 끝을 동물이 되기로 체념하던 남자는 실제로 주변 사람이 동물이 되는 것과 짝을 찾지 못하고 고층에서 떨어져 자살을 시도한 한 여성이 생의 끝에서 끔찍한 울부짖음을 내뱉는 것을 듣고 나서는 짝을 찾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비정한 여인(아게리키 파루리아)과 짝을 이루지만 결국 거짓된 관계는 들통나고 남자는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것도 자신이 원치 않는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외톨이들을 사냥하던 산속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선 외톨이들이 서로 어떠한 로맨틱한 관계도 맺으면 안 된다는 규칙을 가지고 최소한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근시여인(레이첼와이즈)를 만나게 된다. 외톨이 집단에 와서야 진정한 짝을 찾게 된 남자는 관계가 들통나 외톨이 리더(레아 세이두)에 의해 두 눈을 잃은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고 처벌하려는 독재자를 들개들의 밥으로 던져주고 여인과 함께 도시로 도망친다. 도시에서 둘 사이의 로맨스적인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시험대에 오른 남자의 손에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할 스테이크 칼이 놓여있다. 망설이는 남자, 남자가 증명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여인,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들리는 바다의 소리. 그렇게 영화는 둘의 결말을 선명히 드러내지 않으며 끝마친다.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면 "세상 무엇보다 당신만을 사랑해"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조심해, 위험한 거 같아"

처음에는 두 암호가 헷갈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When we turn our heads to the left, it means "I love you more than anything in the world" 

When we turn our heads to the right, it means "Watch out, We're in danger"

We have to be very careful in the beginning not to mix up.


극 중 여인이 눈을 잃는다는 것은 둘 사이의 암호가 쓸모없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며 결국 둘의 소통에 제약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남자는 독일어를 가르쳐보려는 등 둘 사이의 소통방식을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답답함을 느낀 남자는 마지막으로 시각적 언어를 음성언어로 치환하며 여인에게 끝내 도망치자 말하였다. 남자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눈을 먼 여인도 품을 수 있을 만큼 남자의 사랑은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볼 수 있게 증명하라는 사회의 시스템 아래 남자는 자신의 눈을 스스로 멀게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사회가 정해놓은 증명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일까? 개인의 사랑에 왜 타인의 증명과 지지가 필요한 것일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들려오는 바닷소리에 결국 남자는 랍스터가 되기로 결정했음을 추측 가능함에 있어서 여인과의 사랑이 거짓된 사랑은 아니었음을, 다만 그 증명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떠나는 것이 사랑 또한 생존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 생존 그 자체임을 체념하는 결국에의 동물과의 연대감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직접적인 죽음에 근접한 위협아래 사회에서 정의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그 본연의 정의와 이질적인 것인지 나름의 유쾌함으로 조롱하고 있다.

 

 

 

 

댓글